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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 / 정와연


수선집 사내의 어깨에 말의 문신이 매어져 있다

길길이 날뛰던 방향 쪽으로 고삐를 묶어둔 듯

말 한 마리 매여 있다

팔뚝에 힘을 줄 때마다

아직도 말의 뒷발이 온 몸을 뛰어다닌다 

고삐를 풀고 나갈 곳을 찾고 있다는 듯 연신 땀을 흘린다

저 날리는 갈기를, 콧김을, 이빨 드러내는

투레질을 굵은 팔뚝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저 사내 알기나 할까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절에 스스로 마구간을 짓고 

지독한 결심으로 고삐를 매어두었을지도 모른다



말은 복종하는 발굽과 항거하는 발굽이 다르다

앞발을 굽힐 때 뒷발은 더 빡세게 버티는 법이다



어느 뒷골목의 시간들을 붙잡아 

사내의 안쪽을 향하게 단단히 묶었으나

꿈틀거리는 역마살이란 언제까지 갇혀 있을 발굽이 아니다 

비좁은 마방에서 수년 째 구두를 깁는 일이

자못 수상하기까지 하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偶然)이 있다면 그것은 다 길의 파본이다



발굽을 갈아 끼울 때마다 사내는 

박차고 나가려는 팔뚝의 불뚝한 말을 오래 쓰다듬듯 주무른다

이제야 말 한 마리를 다룰 줄 안다는 듯

말과 주인이 따로 없다는 듯이

 

 

 

 

[시 당선소감] 정와연 “젊은 정신으로 세상을 보겠습니다”

 

젊은 시를 공경하며 사는 일이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잘 타일러 멀리 보내버렸습니다. 

왜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둔해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장 믿는 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우둔함을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정하고 갈 뿐입니다. 젊은 정신으로 사물을 보겠습니다.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전화 한 통은 실로 꿈을 꾸는 듯했습니다. 떨리고 겁이 났습니다. 몸을 흔들어 정신을 차려봅니다. 

이토록 멋진 장을 열어주신 영남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저의 글을 뽑아주신 이하석 선생님, 송재학 선생님께 진심어린 큰절 올립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걸어가겠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님과 여러 선생님 감사합니다. 등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 시 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세 딸, 음악활동에 열중인 아들(나무)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이 기쁨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시 심사평] 이하석·송재학 “명쾌한 논리와 탁월한 언어감각 자신만의 ‘감각의 통점’ 짚어내”

 

장유정씨의 ‘나무 옮겨 심는 법’, 정와연씨의 ‘말’, 김묘숙씨의 ‘편자꽃’, 이인숙씨의 ‘모자이크’ 등이 우리가 마지막까지 읽은 작품들이다. 

본심에 올라온 수십 편의 시들은 그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카피한 혐의가 있다. 원본은 사라지고 카피본들의 베껴쓰기가 다반사로 이루어진 세간의 형편과 다르지 않다. 수사와 기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점은 위안이지만, 카피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기에 이번 심사는 곤혹스러운 체험이다. 

본심의 작품들은 대체로 비슷한 감각의 폴더를 공유했다. 어떤 책의 감동이 블로그를 통해 흔적처럼 남겨지고, 이후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은 앞선 사람의 블로그를 거치면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다. 

음악도 영화도 같은 폴더라는 소비패턴을 반복한다. 그것은 또한 감각에서조차 트렌드를 생산한다. 즉, 문화의 접점이 개별적이지 않다는 비효율성을 생산한다. 문학의 본질이 사유의 진보와 확장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필사적으로 개별이자 개성적이어야 한다. 숭고미가 있다면 추악한 아름다움이라는 대구(對句)의 필연성이 문학의 범주다. 

문학은 대상과의 적절한 타협이 아니다. 필경사가 철필로 새겨가는 심정으로 처절하게 모든 것들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저잣거리에 널리 유통 중인 수월한 감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이 가진 ‘감각의 통점’을 짚어내는 것이 문학이다.

장황해졌지만 그런 점에서 정와연씨의 ‘말’은 다소간 독보적이다. 게다가 명쾌한 논리성과 우월한 언어 감각에 기대고 있다. 당선작 ‘말’은 구두수선공의 어깨 문신에 주목한 작품이다. 

문신 속의 말(馬)은 수선공의 내면과 수작하면서 수선공이라는 개별적 삶의 문어체를 획득한다. “닳고 닳은 뒤축을 깁는 일”과 “말의 박차를 박는 일에 우연이 있다”는 두 갈래 상상력을 길의 파본이라 파악하는 삶의 성찰성에 우리는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다른 작품 ‘의태 계절’과 ‘샌들의 감정’에서도 독특한 감각이 드러난다. 그 두 작품은 ‘말’보다 더 풍요로운 문학 생태를 드러낸다.

신춘문예 당선이 일희일비가 아니라 행복한 감정이 되려면, 오랜 훗날에도 진정성을 유지하는 시인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