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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고양이119 / 유두진

 

사촌 형네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중학생인 사촌 형은 건넛마을에 산다. 그리 멀진 않지만 걸어서 가기는 힘든 거리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 뭔가가 보인다. 정류장 의자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나는 눈을 비비며 고양이한테 초점을 맞췄다. 그러는 사이 한 아줌마가 고양이 쪽으로 다가갔다.

"야옹아, 너 어디 아프니?"

아줌마가 물었다. 검은 털에 초록색 눈망울을 가진 어른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였다. 가끔씩 내뱉는 야옹, 소리가 너무 가냘프다. 많이 아픈가 보다. 저 몸으로 어떻게 의자에 올라갔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줌마가 아픈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거였다.

"이렇게 귀엽게 생긴 애가 왜 여기서 떨고 있어."

아줌마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번호를 확인한 아줌마가 고양이를 그냥 둔 채 버스에 올랐다.

'어? 그냥 가시는 건가.'

나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줌마가 떠난 이후에도 오가는 사람 몇몇이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귀엽다며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몇 분 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지금 버스를 타면 사촌 형과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고양이는…. 이렇게 작고 약한 녀석인데,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른다. 승강장에 서서 계속 고양이를 돌아보았다.

"탈 거니 안 탈 거니?"

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결국, 나는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나자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녀석의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보니 문득 사회시간에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지역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단체가 있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우리 지역 동물보호협회를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번호가 있었다. 곧바로 전화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아픈 고양이를 발견했어요."

내 말을 들은 협회 직원의 대답은 그러나 떨떠름했다.

"고양이요? 우리는 버려진 개들만 취급해서요."

"개만요?"

약간 당황스러웠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 지어 보호한다는 게 뭔가 아쉬웠다.

"번호 알려줄 테니 구청에 문의해 보세요."

협회 직원이 짧게 말했다. 나는 받아 적은 구청 번호로 전화를 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신호가 여러 번 갔지만 받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어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음성만 들려왔다.

'그냥 가버릴까….'

난감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처음부터 모른 척했다면 모를까,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뭔가를 해야 했다. 다시금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여린 눈망울을 보니 느닷없이 아라가 떠올랐다.

2년 전이었다. 아라네 가족이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온 것은…. 아라는 갓 돌을 지난 아기였다. 위로 네 살 된 오빠 지훈이가 있었다. 아라를 처음 봤을 때 무슨 아기요정이 내려온 줄 알았다. 눈은 꿈꾸는 듯 반짝거렸고 볼은 터질 듯 포동포동했다. 아라는 낯선 사람이 안아도 방실방실 잘 웃었다. 아라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아라 좀 보세요. 정말 예쁘죠?"라고 자랑을 하곤 했다.

얼마 후 나는 아라의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들 지훈이는 친자식이지만 딸 아라는 입양한 자식이라고 했다. 사랑으로 아이를 거뒀다고 했다.

"세상에나, 정말 착한 가족이네."

"그러게. 입양은 가슴으로 아이를 낳는 거라던데."

우리 부모님은 아라네 가족을 칭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구청과 통화하는데 실패한 나는 다시금 휴대폰을 켰다. 현 상황에서 믿을 곳은 역시 119였다.

"네, 소방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 너머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급대원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내 설명을 들은 구급대원 아저씨의 목소리에 곤란함이 묻어났다.

"저기… 최근엔 야생동물 구조를 하지 않고 있어서요."

"왜요?"

"사람 구조하는 일에만 집중해도 인원이 모자라거든요. 미안합니다."

아저씨가 이해를 구했다.

'어떡하지….'

나는 애가 탔다. 어린 고양이는 죽어가는 데 도움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구급대원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잠깐만요."

"네?"

"우리 소방서와 협력하고 있는 동물병원이 있는데, 그곳 연락처라도 알려줄까요?"

"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 후 번호를 받아 적었다. 급히 적어서 끝번호가 '7'인지 '1'인지 약간 헛갈렸다. 동물병원의 연락처를 다시금 살펴보는 와중 지잉지잉, 휴대폰이 울렸다.

"안 오고 뭐해? 게임하려고 다들 모여 있는데."

사촌 형이었다.

"지금 버스정류장인데, 고양이가 많이 아파서…. 죽을지도 몰라."

나는 현재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고양이? 너 고양이 안 키우잖아."

"정류장 의자에서 발견한 새끼 고양이야. 근데 너무 불쌍해서…."

"그럼 119에 신고하고 빨리 와."

"신고했어."

"그런데?"

"119에선 고양이 구조를 하지 않는대."

내 말을 들은 사촌 형이 답답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그냥 자연에 맡겨. 죽을 때 돼서 죽는가 보다 생각하라고."

"그건 좀…."

"그렇게 길가에 널브러진 동물은 수 없이 많아. 불쌍하다고 네가 다 살려줄 거야?"

"……"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사촌 형의 말도 맞는 말 같아서였다.

아라를 다시 본 건 동네 키즈카페에서였다. 아라 엄마가 아라와 지훈이를 데리고 그곳에 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라 엄마는 지훈이하고만 놀았다. 레일기차도 지훈이하고만 탔고 공놀이도 지훈이하고만 했다. 아라는 소파 위에 눕혀 놓은 채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다가 깬 아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라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아라를 안아주었다. 아라는 처음 봤을 때보다 볼살이 홀쭉해 있었다. 얼굴색도 누렇게 떠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 말했다. 아라가 좀 이상하다고, 얼굴빛이 누렇다고.

"아, 그거? 아라가 이유식을 먹다가 약간 체했다고 하더라고. 어제 아라 엄마한테 들었어."

엄마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엄마는 아라 엄마를 좋게 평가했다. 입양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라 엄마는 동네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밝게 인사도 잘했다. 그래서 평판이 좋았다.

'그렇구나….'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라는 아라 엄마가 알아서 잘 키우겠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라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아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라 엄마의 고함소리도 새어 나왔다. 난 그냥 지나쳤다.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촌 형과 통화를 마친 후 다시금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세상을 구경한 지 얼마 안 된 녀석이었다. 자연의 이치에 맡기기엔 뭔가 억울한 생명이었다. 구급대원 아저씨가 알려준 동물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없는 국번이거나 잘못거신 번호입니다' 메시지가 나왔다. 끝자리 7을 눌렀는데 틀린 번호인가 보다. 1로 수정해 다시 눌렀다.

"네, ○○동물병원입니다."

간호사 누나가 전화를 받았다. 맞는 번호다. 나는 또박또박 상황을 설명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어린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말을 들은 간호사 누나가 구조하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젠 사촌 형한테 갈 수 있다. 하지만 간호사 누나가 덧붙인 '한 시간 뒤 도착'이라는 말이 발목을 잡았다.

"네에? 한 시간이요? 무슨 구조가 한 시간이나 걸려요?"

"몇 군데 들렀다 가야 해서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한데 좀 더 빨리 오실 순 없나요. 저도 지금 버스를 타야 해서요."

"목소리가 어리네요. 혹시 학생인가요?"

"네,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럼 주변에 고양이를 맡아줄 만한 어른은 안 계신가요?"

"버스 타느라 다들 바쁘세요. 맡길 만한 가게도 안 보이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간호사 누나가 '학생도 바쁘면 그만 가보라'고 했다. 대신 '버스정류장 번호와 고양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문자로 보내주면 찾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친 후 버스정류장 번호와 고양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간호사 누나에게 보냈다. 1분 후 '확인했음'이라는 답이 왔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이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더는 고양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툭툭 만지작거렸다. 어떤 형과 누나는 집어 들기도 했다.

"오빠, 이 고양이 봐봐. 귀엽지? 데려갈까?"

"글쎄, 너무 약해 보이는데?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견을 나누는 그들 옆으로 버스가 들어왔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였다. 나는 버스에 오를 수가 없었다.

"이 고양이 아파요. 지금 응급차가 오고 있어요."

만지지 말라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형이 표정을 찡그렸다.

"거봐, 아프다잖아. 괜히 데려갔다가 골치만 썩을 뻔했네."

형과 누나가 버스정류장을 벗어나자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뒀다간 동물병원에서 고양이를 못 발견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집어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병원에서 데려갈 고양이입니다. 만지지 마세요'

연필로 적은 후 고양이 옆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러나 곧 떨어졌다. 포스트잇의 끈끈이가 연말의 강한 바람을 당해내지 못해서였다. 걱정스레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찬바람을 맞은 녀석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안타까웠다. 동물병원에 다시 전화했다.

"좀 더 빨리 오실 순 없나요?"

"지금 서두르고 있어요. 그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아요."

"고양이가 많이 추워해요."

"그러면 박스라도 구해서 바람을 막아줘요."

간호사 누나가 말했다.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 건너편에 박스 줍는 할머니가 계셨다. 건너가 중간 크기의 박스를 구했다. 겉면에는 '고양이 만지지 마세요'라고 크게 적었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고양이는 계속해서 몸을 쪼그리고 있었다.

"춥지? 안 춥게 해 줄게."

나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너무 가벼웠다. 그래도 체온은 따뜻했다. 고양이를 박스에 넣고 '고양이 만지지 마세요' 문구가 잘 보이도록 박스 방향을 잡았다. 이제 고양이를 위해 더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잘 있어. 난 이제 가볼게."

고양이한테 작별 인사를 한 뒤 버스가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아라는 머리에 멍이 든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다가 뇌출혈을 일으켰다고 했다. 쓰러진 옷장에 부딪혔다는 게 아라 엄마의 주장이었지만 경찰은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라 엄마가 범인임이 밝혀졌다. 시도 때도 없이 아라를 때리고 괴롭혔다고 했다.

'그때 신고했어야 했는데….'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라의 죽음에 내 책임도 있는 것만 같았다. 아라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했다.

아라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나는 아라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괴로움을 느꼈다. 포동포동했던 아라의 볼살이 계속 떠올라서였다. 어리디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있었다. 승강장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때였다.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박스에 갇히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야옹야옹!

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다. 나는 버스에 오르려다 발을 멈췄다. 기사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망설이다 다시 버스를 떠나보냈다.

'그래 함께 있자!'

병원차가 올 때까지 고양이 곁을 지키기로 했다. 돕기로 했으면 끝을 보기로 했다.

고양이가 무서움을 떨치지 못한 듯 계속 울어댔다. 나는 오른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서워하지 마. 이제 곧 병원에서 올 거야."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 고양이가 점차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추운지 몸을 계속 떨었다. 왼손으로 고양이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작은 몸이 손에 쏘옥 들어왔다. 내 손의 따뜻함을 느껴서였을까. 고양이의 떨림은 차츰 연해졌다.

'다행이다.'

나는 괜스레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계속해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멀리서 주황색 동물병원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당선소감>

 

   -

몇 해 전, 김장을 도와드리려 어머니집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버스정류장 의자 위에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어린 생명이 안타까워 여러 기관에 전화를 넣었지만, 도움 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동물병원의 구조를 기다리며 고양이 옆을 지켰습니다. 연신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왜 안 와, 바빠 죽겠는데!" 어머니가 호통을 치시더군요. 어머니껜 죄송했지만 제가 하는 행동이 '착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살면서 나쁜 짓도 해봤지만, 당시 제가 했던 행동은 분명 착한 짓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부아를 끓게 한 건 나쁜 짓에 가까울지 몰라도요.

당시 경험을 토대로 동화를 썼습니다. 생각보다 쭉쭉 진도가 나가더군요. 하지만 중간에 삽입한 아라의 이야기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아라의 이야기는 4년여 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입양아학대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갑자기 집필이 괴로워졌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그러나 제게는 별로 와닿지 않았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구호가 새삼 떠오르며 가슴을 할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말하고 싶습니다.

'아가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어.'

소설가로 먼저 데뷔했지만, 동화작가 역시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소설 좀 써봤으니 얼렁뚱땅 동화책도 낼 수 있지 않을까? 안이한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화분야 역시 엄격한 프로의 세계였으며, 합당한 자격을 요구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초심으로 돌아가 여러 동화공모전에 도전했습니다.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나…. 자책할 무렵 매일신문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단비 같은 전화였습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몇 해 전 제가 했던 '착한 짓'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 1973년 서울출생
● 2012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소설 당선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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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다양한 소재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래 세계 판타지, AI 문제, 성적 스트레스 등은 동화의 단골 소재라 할 만큼 이번에도 많은 편이었다. 20대 응모자가 적은 편이었고 중장년층 응모자가 많았는데 이는 동화에 대한 관심이 전 연령대로 확장됐음이기도 하고 은퇴 전후 세대가 새로운 활동 무대로 동화 창작을 주목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번 심사에서 눈여겨볼 점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과 북한 이탈 주민 소재를 다루는 양상이 달라진 점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존재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포용의 미덕을 강조하던 기존의 방식 혹은 보호의 대상으로 그려내던 방식이 그들을 평범한 대상으로 묘사하는 태도는 반가운 진일보로 보인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이 쓰레기로 남한에 떠밀려 와서 환경문제를 언급하는 이야기도 전에 없던 방식이라 흥미로웠다.

140여 편이 넘는 작품 중에서 20여 편을 고르고 최종 5편을 후보로 올렸다. 그중에 '고양이 119'와 '적당한 아이의 적당하지 않은 하루'를 두고 고심했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서부터 시선을 끌었다. 그리 대단치 않은 일상에서 주목한 소재라는 점도, 소위 큰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일상성에서 이야기를 찾아내고 인물을 성장시킨 점도 비슷했다.

'적당한 아이의 적당하지 않은 하루'는 능청과 서사 전개 감각이 좋은 작품이었다. '적당히'만 하면 사는 게 편하다 믿었던 주인공이 '하필이면'으로 엮인 상황 때문에 타인과 교감하고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과정이 미더워서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된다.

'고양이 119'는 정류장에 남겨진 새끼 고양이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매뉴얼의 사각지대 혹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주변 상황을 잘 그려냈다. 우리의 이중성을 은근히 꼬집는 시선이 흥미롭기도 하고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등 섣부른 감정을 남발하지 않은 점도 공감할 만했다. 이 작품의 미덕은 감상에 매달리지 않고도 소수자의 편이 되어주는 점, 책임을 지는 태도에 있다. 앞으로도 진득한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라는 신뢰감으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 황선미


 

  <AI와 함께하는 작품 분석>

  

작품 개요


"고양이119"는 버스정류장에서 아픈 고양이를 발견한 초등학교 6학년 주인공이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 동화입니다. 이 작품은 생명의 소중함, 개인의 책임감, 그리고 과거의 후회가 현재의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섬세하게 탐색합니다.

제목 "고양이119"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119는 응급 구조의 상징이지만, 실제 이야기에서 119는 고양이를 구조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현실 사회의 구조 시스템이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비판을 내포하며, 결국 주인공이 스스로 '119'의 역할을 맡게 됩니다.

주제 분석

생명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이 동화의 핵심 주제는 생명의 소중함과 그에 대한 책임감입니다. 주인공은 "이렇게 작고 약한 녀석인데,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고양이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는 과정에서 윤리적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주인공의 행동은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적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뭔가를 해야 했다"와 "돕기로 했으면 끝을 보기로 했다"는 주인공의 생각은 개인의 선택과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동정이나 관심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책임감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과거의 후회와 현재의 선택
아라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회상은 주인공의 현재 행동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합니다. "그때 신고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주인공이 고양이를 포기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됩니다. 이는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비판
"귀엽다며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구절은 현대 사회의 피상적 관심과 실질적 행동 부재를 비판합니다. 동화는 고양이에게 일시적인 관심을 보이지만 실제 도움은 주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무관심 문화를 효과적으로 조명합니다.

성장과 구원
주인공은 아라를 구하지 못했던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고, 고양이를 구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으로 성장합니다. 이 성장 과정은 과거의 후회에서 현재의 적극적 행동으로, 무관심에서 책임감으로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인물 분석

주인공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인 주인공은 동정심이 많고 책임감이 강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자신의 즐거움(사촌 형과의 보드게임)보다 아픈 고양이를 돕는 일을 선택합니다. 처음에는 망설이지만, 결국 "돕기로 했으면 끝을 보기로" 하는 결단력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의 성장은 아라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후회와 고양이를 구하는 현재의 행동 사이의 연결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는 과거의 실수(아라의 상황을 무시한 것)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합니다.

사촌 형
사촌 형은 현실적이고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자연에 맡겨. 죽을 때 돼서 죽는가 보다 생각하라고"라는 그의 말은 많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관점을 대변합니다. 그는 주인공의 윤리적 고민과 대비되는 인물로, 주인공의 선택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라와 아라 엄마
아라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회상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라는 학대받는 입양아로, 주인공의 무관심 속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라 엄마는 겉으로는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라를 학대하는 이중적인 인물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주인공의 현재 행동에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실제 행동의 불일치를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선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기타 인물들
동화에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 관심을 보이다가 떠나는 아줌마: 피상적 관심을 상징
 - 사진만 찍는 사람들: 진정성 없는 일시적 관심을 상징
 - 동물보호협회 직원과 구청: 제도적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들
 - 구급대원 아저씨: 제한적이지만 도움을 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
 - 동물병원 간호사 누나: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인물

이러한 다양한 인물들은 사회적 태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선택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강조합니다.

서사 구조

발단: 문제 상황의 인식
동화는 주인공이 버스정류장에서 아픈 고양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고양이의 상태를 인식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개: 해결 시도와 좌절
주인공은 여러 기관(동물보호협회, 구청, 119)에 연락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경험하고 개인적인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위기: 내적 갈등의 심화
사촌 형과의 대화와 아라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회상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심화시킵니다. 주인공은 버스를 타고 떠날지, 고양이와 함께 남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절정: 결단의 순간
마지막 버스가 도착했을 때, 고양이의 울음소리("야옹야옹!")는 주인공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주인공은 버스를 보내고 고양이와 함께 남기로 결정합니다.

결말: 문제 해결과 성장
동물병원차가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주인공은 "돕기로 했으면 끝을 보기로 했다"는 결심을 지키며 책임감 있는 행동을 완수합니다.

상징과 의미

고양이
고양이는 도움이 필요한 약자를 상징합니다. "어른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라는 묘사는 그 취약성을 강조합니다. 고양이는 또한 과거의 아라와 병치됩니다. 둘 다 도움이 필요한 약한 존재이며, 주인공은 아라를 구하지 못했던 과거의 실수를 고양이를 통해 보상하려고 합니다.

버스와 버스정류장
버스는 주인공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탈출구를 상징합니다. 버스정류장은 선택의 경계선을 나타냅니다. 주인공이 버스를 타지 않고 고양이와 함께 남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기로 한 결정을 상징합니다. 또한 버스정류장은 사람들이 오가며 일시적인 관심만 보이는 공간으로, 현대 사회의 무관심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박스와 포스트잇
주인공이 고양이를 위해 준비한 박스와 포스트잇은 보호와 관심의 상징입니다. 특히 "고양이 만지지 마세요"라고 쓴 박스는 주인공의 보호 의지를 구체화합니다. 이 행동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 체계적이고 책임감 있는 보호 행위를 나타냅니다.

따뜻함과 차가움
동화 전체에 걸쳐 따뜻함과 차가움의 대비가 나타납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과 주인공의 따뜻한 손길의 대비는 무관심과 관심, 냉담함과 따뜻함의 대비를 상징합니다. 고양이가 주인공의 손길에 반응하여 떨림이 줄어드는 장면은 작은 관심과 배려가 가져올 수 있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문학적 기법


감각적 묘사
"고양이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와 같은 감각적 묘사는 고양이의 상태와 주인공의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독자들이 상황의 절박함을 더 강하게 느끼도록 합니다.

대비와 병렬 구조
아라의 이야기(과거)와 고양이의 이야기(현재)는 의도적으로 병렬 배치되어 있습니다. 두 이야기는 무관심과 관심, 불개입과 개입, 비극적 결말과 희망적 결말의 대비를 통해 주인공의 성장과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회상 기법
아라에 대한 회상은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경험을 연결하는 중요한 서술 기법입니다. 이 회상은 주인공의 행동 동기를 설명하고, 이야기에 심층적인 정서적 무게를 더합니다.

감정적 고조와 해소
동화는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긴장이 점차 고조되다가, 마지막 결정 순간("그래 함께 있자!")에서 해소되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러한 감정적 아크는 독자들이 주인공의 여정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도록 돕고,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강화합니다.


교육적 가치

윤리적 성찰의 기회
이 동화는 어린 독자들에게 생명의 가치와 개인의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인공의 윤리적 딜레마와 결정 과정은 독자들에게 유사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게 합니다.

공감 능력의 발달
고양이와 아라에 대한 주인공의 공감은 독자들의 공감 능력 발달을 촉진합니다. 이야기는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른 존재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태도를 길러줍니다.

실천적 행동의 중요성
"돕기로 했으면 끝을 보기로 했다"는 주인공의 결심은 말이 아닌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동화는 선의의 생각이나 감정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사회적 책임감
동화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도 개인의 책임감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주인공이 여러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는 모습은, 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개인의 역할과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는 성장
주인공이 아라의 죽음을 후회하며 고양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과거의 실수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어린 독자들에게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론

"고양이119"는 단순한 동물 구조 이야기를 넘어, 개인의 윤리적 책임과 성장에 관한 깊이 있는 탐색을 제공합니다. 주인공이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 보여준 끈기와 노력은 사회적 무관심과 냉소 속에서도 개인의 윤리적 선택과 행동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어린 독자들에게 "나 하나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아라를 구하지 못했던 과거의 실패가 고양이를 구하는 현재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린 독자들에게 과거의 실수에 얽매이지 말고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용기를 줍니다.

결국 "고양이119"는 단순한 교훈이나 도덕적 메시지를 넘어, 어린 독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윤리적 주체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사고의 씨앗을 심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