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풀씨창고 쉭쉭 / 이주송
풀씨창고 쉭쉭 / 이주송 멧돼지 한 마리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산기슭이 들어 있다 노루발, 뻐꾹채,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벌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 멀리 가고 싶은 풀씨들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면 된다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 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댈 터 씨앗들은 직파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섬에는 국제종자보관창고가 있다 먼 훗날의 구호를 위해 멧돼지 한 마리 그 쉭쉭거리는 씨앗창고를 기르고 싶다 이 산과 저 산 이쪽 풀밭과 저쪽 풀밭이라는 말 다 멧돼지의 등짝에서 떨어진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나들이로 섞이는 산 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 멧돼지 꼬리에서 반딧불이 날아오르고 꺼칠한 오해 속에서도..